책, 그림, 음악 에세이873 (1일 1글) 더위 더위란 것은 아무 생각이 없다. 따뜻함을 넘어서는 순간 더위를 상냥하게 다소곳이 마주할 수 없게 된다. 더위에게 불쾌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는데, 더위란 감정이 없어서 사람들의 표정을 읽지도 못한다. 더위가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다면 오늘처럼 생각없는 짓을 하지는 않으리라. 2021. 6. 30. (1일 1글) 장마 7월부터 장마가 시작된다, 고 한다. 보통 다른 해보다는 1~2주 정도 늦는 편이다. 그런데 장마가 언제 끝날지는 모른다, 고 한다. 장마전선이 이제 올라오는 낌새가 보이니 1주일전에 예보가 가능했나보다. 기상이변이 종종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다보니 장마가 언제 끝이 날지는 그때 가봐야 안다, 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날씨를 때려 맞추는 일은 감히 어려운 일이다. 슈퍼컴퓨터의 인공지능으로 분석해도 에라 모르겠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2021. 6. 29. 정으로 다듬다 나의 취약하게 모난 부분들을 더듬어 보며 하나씩 하나씩 내 앞에 꺼내놓고 정으로 두드려 다듬어보는데 워낙에 세월에 굳어져 곧이곧대로 되지 않는다. 근성이 부족하여 이대로 낙심하고 마는데, 한번 포기하고 말면 두번 다시는 재기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올라온다. 원래 단단한 돌은 한방에 깨뜨릴 수는 없는 법이다. 수없이 정으로 쪼아서 구멍을 만든 다음 둔치 같은 걸로 한방에 짜개 버리는 것이다. 근성과 끈기가 부족하다면 이참에 길러서 끈질기게 정으로 다듬어보아라. 내가 닳아서 없어지더라도. 2021. 6. 29. 무라카미 하루키 <밤의 거미 원숭이> 무라카미 하루키 , 2008, 문학사상 초단편소설이다. 이걸 소설이라고 말하기가 무안할 정도다. 언뜻 작가의 에세이라 착각할만하다. 그런데 지어낸 이야기라고 하니 논픽션이 아닌 이상 소설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너무나 짧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단숨에 이야기 한편이 끝을 맺는다. 덩달아 여운도 길지 않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단편을 좋아하긴 한데, 이렇게 짧은 이야기는 글쎄다. 2021. 6. 28.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 2017, 민음사 민음사에서 발간한 표지가 일단 마음에 든다. 마치 마크 로스코의 추상작품을 연상케 하는 표지다. 이 책은 아마 확실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내 나이 20대 끝무렵이나 30대 초반쯤에 읽었을 것이다. 벌써 세월이 흘러 줄거리도 책 속의 인물도 기억이 나는게 없다. 정말이다. 어떻게 이 정도로 모두 잊어버릴 수 있을까. 설마 읽지 않은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그때 당시에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을 터였다. 그렇듯이 빌린 책은 여유롭게 읽을 만한 시간을 주지 않는다. 대출기한도 요즘처럼 길지도 않았다. 일주일정도 그랬던 것 같다. 아마도 빠른 속도로 읽어나가 깊이 없이 읽었을 것 같다. 그랬으니 떠오르는 기억이란 게 이 정도로 없는 것이 아닌가. 이 책을 만난.. 2021. 6. 28. 일기예보3 오늘 오후에는 정말 소나기가 소나기답게, 소나기 다운 면모를 잃지 않고서 힘차게 쏟아졌다. 양동이로 퍼붓는다는 말이 맞게. 잔뜩 새까만 먹구름이 땅을 향해 중력의 속도로 추락하는 것 같은 위세였다. 쏴아아악. (정확히는 이런 소리는 아니다.)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어도 소나기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주변의 소음은 당연히 묻힌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아스팔트, 흙, 지붕 등에 내려 꽂는 소리는 가슴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것만 같았다. 뭔지 모르겠지만 기분도 슬슬 풀린다. 오늘은 일기예보가 맞았다. 그러나 우산은 필요하지 않았다. 우산을 받고 나갈 일이 없었다. 소나기한테 약오르는 일이 될테지만, 나는 창문을 빼꼼히 열고 고개를 내밀어 소나기를 바라만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021. 6. 28. 이전 1 ··· 81 82 83 84 85 86 87 ··· 146 다음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