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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림, 음악 에세이/그림이 있는 에세이310

불안 말을 할까, 말을 하지 말아야할까, 같은 말을 두고 주저한다. 망설임은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왔다. 익숙해져버린 초조함. 초조함은 불안감으로 물든다. 같은 이름을 중얼거린다. 그 이름은 그 사람이 된다.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이 눈 앞에 다가온다. 이름을 몇 번씩 소리를 내어 말한다. 내 목소리가 떨린다. 마치 바로 앞에 있는 것마냥 불안하다. 불안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다. 불안을 '불안'이라고 적는다. 불안한 심리를 글로 적어보면 조금은 나아질까, 하는 기대를 갖는다. 공책에 쓰여진 불안은 내가 느꼈던 불안과 대치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활자화된 불안이란 글자는 불안이란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조금도 불안은 잠잠해지려 하지 않는다. 불안이란 글자가 점점 불안하게 다가온다. 불안 두 글자.. 2024. 3. 14.
졸졸졸 좁은 수로로 물이 흐른다. 수로는 물이 흐르는 걸 뭐라 하지 않는다. 물은 수로를 따라 아래로 흘러간다. 물은 그 길로만 가야하는 것처럼 흘러간다. 흘러간 물은 다른 물과 합류되어 어느 곳에 이르게 될지 모른다. 흐르는 물은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는 것만 같다. 수로는 흘러가는 물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짧은 순간에 바닥을 훑고 지나가는 물에게 딱히 해줄 수 있는 말이란게 애당초 없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그 둘 사이에 침묵이 있을 것 같지만, 흐르는 물은 졸졸졸 소리를 낸다. 아주 가까이 귀를 대고 있어야 들리는 소리다. 물이 불면 그 소리는 더 작아진다. 물의 덩치가 커지니 무게 있게 움직인다. 그래서 졸졸졸 소리는 침묵 속으로 파고든다. 그러나 졸졸졸 흘러가는 물소리를 수로라서 해서 싫어하지.. 2024. 3. 8.
산책(너에 대한 생각) 산책(너에 대한 생각) 이 길을 걸을 때마다 생각한다. 이 길은 무언가를 생각하게 한다. 생각은 이 길을 걷게 될 때 떠오른다. 생각은 다른 길을 걸을 때도 떠오르기는 하지만, 이 길은 무언가를 특별하게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다. 이 특별한 생각은 이 길을 걸을 때 분명하게 내 머릿속을 채운다. 이 생각은 처음부터 특별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특별하게 의미가 붙여졌고, 한번 붙여진 의미는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나를 붙잡는 이 특별한 생각은 이 길을 걸을 때마다 내 주변에서 맴돌았다. 나를 사로잡는 이 생각은 이제는 특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길을 걸을 때, 찾아오는 이 생각은 더이상 특별하지 않다. 이 생각은 그저 이 길과 만나게 되면 자연 발생하는 생각일 따름이다. 반사적인 반응일.. 2024. 2. 16.
비내리는 날에는 비가 내리는 날이다. 꼭 이런 날에는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그는 녹색 대문 앞에 서성거리고 있다. 녹색 대문집은 그가 알고 있는 집이다. 그 집에 살고 있는 그 누군가를 그는 알고 있다. 그가 알고 있는 그 누군가가 그 녹색대문을 열고 나오는 걸 본 적은 없다. 그가 알고 있는 그 누군가가 그 녹색대문으로 들어가는 걸 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그는 그 누군가가 그 녹색대문집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누군가는 그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잘 알고 있다는 말은 그가 그 사람의 얼굴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 사람의 이목구비를, 뚜렷하게 생긴 건 아니지만 그 사람의 얼굴에서 조화를 이루는 그것들을 인상이 남도록 그의 기억의 한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동그랗게 큰 얼굴에 .. 2024. 2. 14.
운동과 잡념 달린다 가뿐 숨을 몰아쉰다 심장이 뛰는 걸 알게 된다 한바탕 운동을 하고나면 맑아진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란 잡념따위 들어설 데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이렇게 숨을 쉬고 있음을 이렇게 잡념을 물리치려 애를 쓰고 있음을 이렇게 살아있음을 알게 된다. 2023. 11. 8.
생각과 말 보고 싶다, 생각해서 보고 싶다, 말할 수는 없다. 생각은 생각만으로 말은 말이 되지 못하고 만다. 2023.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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