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림, 음악 에세이/그림이 있는 에세이326 행불 아무런 소속 없이 떠도는, 정체가 불분명한 너의 소재에 대해 당장 파악하고 싶지만 너의 흔적을 어디서 부터 더듬어 추적해야할지 난감하기가 끝이 없어, 그 답답한 마음을 무엇으로 대신해야할지 전혀 모르겠다. 알 수 없는 것은 이 만한 일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의 가벼움. 도저히 쉽게 묘안을 얻어 문제를 풀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눈을 비비벼 찾아봐도 없을 정도이니, 너의 행방을 아무리 추궁해도 꼬투리를 잡을 수 없는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수수께끼처럼 쉽게 풀릴듯 하면서도 막상 알아챌 것 같으면 어디론가 도망갈 구멍을 파놓고 들어가버리는 너를, 그런 너의 그림자라도 봤으면... 2003. 10. 2020. 4. 24. Arkhip Kuindzhi <Snow tops> Arkhip Kuindzhi, , 1895, oil on paper , 19 x 26.5 cm, Chuvash State Art Museum, Cheboksary, Russia 설산의 봉우리 잔설들은 이미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계곡물이 불며 잠자코 있던 생명들을 깨우게 했다. 물은 속도를 붙이다가 딴데서 내려온 물과 합류하며 가속도를 줄인다. 물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싹이 움트는 장면을 목격한다. 유유히 흘러갈수록 연둣빛 새잎들에게서 감격스러워 한다. 어느덧 바다에 이른다. 은빛 물결을 차고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만난다.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여 물은 그들을 두껍게 에워 감싼다. 2020. 3. 10. Henri Lebasque <Reading in the Garden> Henri Lebasque(프랑스,1865-1937), 야외의 한적한 벤치에서 책읽기에 몰두해있는 중년의 사내가 있다. 타인의 방해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의자의 한쪽 끝에 자리를 잡고 있다. 한낮의 햇빛을 막아주는 나무그늘은 시원해보이며 아늑한 보금자리처럼 보이기까지 하다. 그 곳은 책을 읽기위해 오래전부터 찾다가 찾게된 그만의 비밀장소일 수 있다. 2020. 3. 4. Richard van mensvoort <Reading and Art> Richard van mensvoort(네덜란드, 1972), Reading and Art 잠시 멈추게 된다. 책을 덮어놓는다. 읽을 책들이 읽은 책 뒤에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은 독서에 관한 그 어떤 행위를 하지 않을 작정으로 가만히 앉아있다. 두께가 다른 여러 권의 책들이 책상에 쌓여있다. 삐뚤하게 모서리들이 튀어나온 모양이다. 책장에도 네모나게 각진 옆면에 굵게 쓰여진 책제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눈길을 돌린다. 책을 읽을 수 없다.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이런 냉정한 마음은 주기적으로 흐름을 타고 생겼다가 사라진다. 오래 갈 수도 있고, 며칠 이러다 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꽤 오래 갈 것 같다. 책에 대한 애정이 메말라버린게 아니다. 책에게서 그 어떤 감흥 따위를 놓치며 .. 2020. 2. 24. Richard van Mensvoort <Spring snow> Richard van Mensvoort(1972,네덜란드), 한달이 지나 다시 한달이 됐다는 걸, 여러 공과금 지로용지들이 날라오면 실감난다. 한달동안 지내온 흔적들이 고스란히 지로용지의 숫자에 새겨져있다. 내가 이 정도로 살아왔다는 것을 숫자의 크기들이 알려준다. 난 그 숫자들을 파멸시킬 수 있는데 그럼과 동시에 나의 삶도 파국에 이르게 될 수 있다. 2020. 2. 19. Jean Beraud <The Cycle Hut in the Bois de Boulogue> Jean Beraud, The Cycle Hut in the Bois de Boulogue, 1901 굳이 옷을 챙겨입고 차를 몰아 식당까지 가서 밥먹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음식배달주문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동시간보다야 덜 걸린다. 혼자가서 먹긴 어려운데 이만원 이상 주문하면 혼자 아지트에서 먹을 수 있다. 타인의 시선에 신경쓰이는 일 없이 마음 편하게 목구녕으로 음식물을 넣을 수 있다. 예전에는 음식점에 전화를 걸어 주문하는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음식주문대행서비스업체를 통해 주문과 결제서비스를 대행하여 처리된다. 음식점은 실시간으로 주문현황을 파악하고 음식을 만들어 퀵서비스를 통해 주문자에게 배달한다. 그리고는 얼마간 수수료와 배달료를 나눠 갖는다. 얽혀있는 곳만.. 2020. 2. 13. 이전 1 ··· 38 39 40 41 42 43 44 ··· 55 다음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