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수로로 물이 흐른다. 수로는 물이 흐르는 걸 뭐라 하지 않는다.
물은 수로를 따라 아래로 흘러간다. 물은 그 길로만 가야하는 것처럼 흘러간다.
흘러간 물은 다른 물과 합류되어 어느 곳에 이르게 될지 모른다.
흐르는 물은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는 것만 같다.
수로는 흘러가는 물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짧은 순간에 바닥을 훑고 지나가는 물에게 딱히 해줄 수 있는 말이란게 애당초 없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그 둘 사이에 침묵이 있을 것 같지만, 흐르는 물은 졸졸졸 소리를 낸다.
아주 가까이 귀를 대고 있어야 들리는 소리다.
물이 불면 그 소리는 더 작아진다.
물의 덩치가 커지니 무게 있게 움직인다.
그래서 졸졸졸 소리는 침묵 속으로 파고든다.
그러나 졸졸졸 흘러가는 물소리를 수로라서 해서 싫어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 소리는 길을 내준 수로에게 애교 섞인 교태로 볼만하다.
소리를 내는 물은 이제 흘러가고 돌아오지 못함을 암시한다.
그래서 한번 지나간 그 자리에 대한 서운함과 아쉬움을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 찰싹 붙어서 졸졸졸 흘러가는 물은 파란 물색을 뽐낸다.
그 아래로 잉어들이 돌아다닌다.
숨은 그림처럼, 잉어들은 물빛을 조금은 닮아있다.
물빛은 조금은 잉어의 비늘 빛을 닮았다.
물이 흘러가면 잉어도 흘러간다.
물을 따라 흘러가는 잉어는 물길을 거슬러 갈 생각을 아직은 하지 못한다.
한참을 가다가 불현듯 잉어는 내려왔던 길을 따라 올라갈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꼬리지느러미를 팔랑거리며 물살을 해칠 것이다.
한번 떠나면 영영 찾지 못하는 물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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