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무라카미 하루키 <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92쪽까지 읽고
92쪽 까지 읽고 인상적인 문단과 그 문단속의 문장은 아무래도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함축된다.
개인보다 집단이 강하다는 사실.
78쪽에는 이렇게 적시하고 있다.
'개인과 조직이 싸움을 하면 틀림없이 조직이 이긴다. 개인이 조직에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은 어수룩하지 않다. 장기적으로 보면 마지막에는 반드시 조직이 승리한다.'
호모사피엔스가 지금까지 살아남았던 이유는 개인의 역량보다 집단으로서의 연대의 힘이 컸기 때문이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 라는 말이 비단 어떤 조직과 단체의 운명에만 국한된게 아니었던 것이다.
인류의 삶은 서로 돕고 돕는 관계에서 종족보존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거칠고 야만적인 자연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방법 말고는 호모 사피엔스에게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은 없다.
작가는 다음의 문장으로 생각을 이어간다.
'혼자서 살아가는 것은 어차피 지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개인이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그 존재 기반을 세계에 제시하는 것, 그것이 소설을 쓰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를 관철하기 위해 인간은 가능한 한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해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위의 말속에는 작가의 철학과 가치관이 녹아있다.
어디에도 소속되기를 좋아라하지 않는 작가에게 이를테면 어떤 문인협회나 문단조직에 대해서 본래적으로 갈등의 관계라 할 수 있겠다.
집단성이 갖는 거만함, 억압, 강제 등의 폭력성은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성격일 수 있다.
서로 우호적일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작가는 일찍이 일본을 떠나 해외 도처에서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며 글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들이 일본문단의 비평가에 의해서 평가 받는 것조차 싫어했고, 권위적인 상을 받는 것에 대해 기대하지도 않았다.(물론 수상을 거부한 적은 없다.)
작가는 일본 국내의 독자나 해외의 독자들이 하는 작품평에 대해서는 너그러웠고, 한때는 일일이 손편지로 답장을 한 적도 있기도 하다.
한 개인으로서 생활을 누릴 수 있고, 한 개인으로서 생각을 펼 수 있는, 그 수단이 자유롭고 타인으로 부터 공감을 나눌 수 있는 방법으로서 소설을 택했고, 그 세계를 작가는 사랑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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