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한트케, <관객모독>, 민음사, 2022 1판 12쇄
이 책을 읽기 전에 한트케가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그 배경에 대해 조금 알고 시작하는게 좋다.
왜냐면, 무의미한 말들이 반복되는 이 책을 이해한다는 일은 우리가 처음 보는 사람을 마치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적어도 한트케가 무슨 마음으로, 어떤 결심을 작심해서 썼는지 독자는 조금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한트케가 젊었을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종교, 신앙, 철학이 힘을 잃어가는 시대였다.
그 자리를 과학이 차지하게 되었는데, 인간의 정서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간과됐던 일들이 과학의 힘을 빌려 분석되고 연구되고 해석되어졌다. 즉 세상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확 바뀌어지게 된 것이다.
문학이란 것도 그 영향을 벗어날 수 없는 법이다.
사건이나 개인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방식이 과거의 작법이었다면,
한트케는 이러한 전통적 방법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단어와 문장의 구조적 기능에 열중하였고, 그것은 의미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문장-문단-글로 이어지는 구성에 집착하였다.
또한 단어들이 문맥적 의미전달의 효과적인 소통을 거부하고, 단어가 문장안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어지는 기능적 요소에 국한하였다.
이러한 한트케의 시도는 당대의 소쉬르의 언어학 즉 기호학에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하다.
따라서 <관객모독>은 문학의 한 형식- 연극을 빌려서 완성한 말장난 같은 글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말장난을 좋게 말해 언어유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정서상 우리하고 맞지 않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웃음 코드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이 책을 읽다보면 모독을 당하고 있다는 모욕감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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