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문, <프롤로그 에필로그> 142~163쪽을 읽고
한없이 호박 얘기를 하는 이 페이지 구간은
여느 페이지보다 읽기 까다롭고, 극한 인내심이 요구된다.
"~호박을 우습게 보거나 호박 하면 떠오르는 게 별로 없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호박은 절대로 우습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게 호박은 호박 이상으로 흥미로운 것을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흥미로운 것이었고, 나는 호박에 대해서라면 할말이 많았고, 호박에 대해서만큼 할말이 많은 것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할말이 많았고, 호박에 대해서라면 누구와도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얼마든지 얘기할 수도 있었는데~~"
호박에 대한 얘기는 이렇게 운을 떼고 시작하는데,
그 이야기는 무려 21쪽 분량이 된다.
물론 163쪽까지만 읽었으니, 그 뒷 장으로 더 이어질지는 아직 모른다.
호박에 대한 얘기는 젤라토를 한참 얘기 하는 도중에 튀어나왔고, 호박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도 호박과 관련없는 이야기를 한참 하기도 한다.
듣는 이를, 혹은 읽는 이를 배려하지 않은 태도로 일관성을 갖고 무섭도록 잔인하게 호박과 연상되는 말들을 늘어뜨린다.
읽다보면 딴 생각이 들고, 앞의 말을 전부 잊어버리게 되며
대체 무슨 글을 읽고 있었는지를 헷갈리게 된다.
아주 유쾌하게 작가의 술수에 휘말리게 되는데, 작가의 속셈에 비추면 그렇다는 것이고
독자는 작가의 술책에 무방비 상태로 당했다고 볼 수 있다.
멍한 기분으로, 대체 무엇을 보았는지를 기억하지 못한채
허망한 표정을 짓고서 책을 덮고 있는 자신을 목격하게 된다.
※ 이 책이 장황한 글인 것을 감안하여
차라리 책의 두께도 상당하게 그리고 하드커버로 장식했다면
조금 더 책과 글이 잘 어울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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