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고 있었지.
내 발걸음은 마치 발주인의 기분따윈 상관하지 않고 신바람이 난 것처럼 앞사람들을 막 제끼며
어디론가 나를 데리고 다녔어. 나는 내 발걸음이 하는데로 내버려두었어.
내 발따위가 나를 어떻게 할지 두고보고 싶었어.
나를 수렁같은 곳에 데려간다해도 내 발걸음에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런 내가 방귀차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도저히 빨라지지 않는 몸체인데도, 있는 힘껏 다해
달려가려는 방귀차의 고통스러운 몸부림이 그런 생각을 들게하였어. 나는 발걸음에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상체때문에 몹시 불편하기도 했어. 뒤로만 제껴지는 바람에 내 발걸음이 상당히 애를 먹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까지 들었어. 조금이라도 발걸음에 누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육상선수들처럼 팔을 앞뒤로 휘저었어. 그러면 앞으로 더 잘 갈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렇지만, 조금도 발걸음의 속도에 따라가질 못했고, 오히려 몸의 균형을 놓치기가 쉬워져서
몸 전체가 기우뚱거렸어. 발걸음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
내 발걸음은 내내 혼자 바빴기 때문에 내 사과를 받아줄만한 여유가 없어보였어.
나는 계속해서 내 발걸음이 하자는대로 묵인하였고 머릿속이 아찔해지기까지 했어.
가슴 밑바닥부터 느껴지던 숨가뿜이 점점 머리끝으로 올라와 내 머릿속을 뒤엉켜놓는것 같았어.
이러다가 죽는게 아닐까하는, 최후의 염려에 나자신을 혀로 차기도 하며,
스스로 위안을 주기도 했지만, 별로 위안을 받을 수는 없었어.
눈앞이 아련해지면서 안개속을 걷는 것 같은, 안개속에 묻혀 나 자신마저 안개가 되어버릴 것만 같은,
내 머리속에서 빙빙도는 몹쓸 생각들의 쪼가리들 따위도
안개속에 파묻혀버리기를 바라는...
2003. 12. 15.
'책, 그림, 음악 에세이 > 그림이 있는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입운동 (0) | 2020.04.24 |
---|---|
숨소리 (0) | 2020.04.24 |
매력 (0) | 2020.04.24 |
말문 (0) | 2020.04.24 |
가을초입 (0) | 2020.04.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