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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림, 음악 에세이/그림이 있는 에세이

헤르만 헤세 -일기장 한쪽

by soodiem 2021. 12. 9.

헤르만 헤세 -일기장 한쪽

 

집 뒤 언덕진 곳에 오늘 나는

뒤엉킨 뿌리들과 자갈이 많은 땅을 파헤쳐

구덩이를 하나 깊숙이 팠다. 

그 구덩이로부터 돌을 하나하나 골라냈고

메말라 푸석거리는 흙도 파냈다. 

그러고는 한 시간 동안 그 오래된 숲 속의 

여기저기에 무릎을 꿇고 손에 삽을 들고

썩은 밤나무 밑둥치에서 

그 검고 버슬버슬하고

따뜻한 버섯 냄새가 나는 흙을 파내

두 양동이에 가득 담아 옮겼다. 

그리고 그 구덩이에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나무 주위를 이탄질의 흙으로 잘 감싸주었고,

햇빛에 따뜻해진 물을 살살 부어

뿌리를 씻어주고 진흙으로 부드럽게 메워주었다. 

작고 어린 나무는 거기 서 있다, 앞으로도 거기 서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다 사라진 뒤에도, 우리가 사는 날들의 

소란스런 위대함과 끊임없는 고난과

그 극심한 불안이 다 잊혀진 뒤에도

알프스의 열풍이 그를 휘게 하고, 비바람이 그를 흔들어 댈 것이다. 

태양은 그에게 미소지을 것이며, 젖은 눈은 그를 짓누를 것이다. 

검은 방울새와 딱따구리가 깃들여 살 것이며,

발치에는 고슴도치가 조용히 땅을 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예전에 겪고 맛보고 견뎌낸 것들,

해가 가면서 달라지는 동물들, 

억압, 치유, 바람과 햇살이 주는 다정함,

이런 것들이 날마다 소슬거리는 나뭇잎의 노랫소리로

우듬지의 온화한 몸짓으로

깊은 잠에 빠져 몸을 움츠린 꽃봉오리를 축이는

부드럽고 달콤한 수액의 향기로

스스로 만족하여 유희하는

빛과 그림자의 영원의 장난이 되어

그 나무에서 흘러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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