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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정원 일의 즐거움>

by soodiem 2021. 11. 5.

헤르만 헤세 <정원 일의 즐거움>, 이레출판사, 2001

이 책속에서는 <고독하고 의연한 나무들>이란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나무에 대해 내가 평소 느끼고 있었던 감정을 말로서, 글로서 표현을 못하고 있었는데(재주가 아주 미천하여) 일찍이 헤세는 글로 표현하고 있었다. 

역시 헤세다. 

 글의 일부분을 옮겨본다. 

 나무들은 늘 나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끄는 강력한 설교자였다. 나는 나무들을 숭배한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서서 자라는 나무들, 가정집 안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 크고 작은 숲 속에서 살고 있는 나무들을 숭배한다. 한 그루씩 홀로 서 있는 나무들을 나는 더욱 숭배한다. 나무들은 마치 고독한 존재와 같다. 나약함 때문에 현실을 피해 은둔한 자들과는 다르다. 나무들은 베토벤이나 니체처럼 위대하고도 고독하게 삶을 버티어 간 사람들 같다. 나무 꼭대기에서는 세계가 윙윙거린다. 나무뿌리들은  무한 속에 안주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나무들은 모든 생명력을 끌어모아 오직 한 가지만을 위해서 분투한다. 그것은 바로 나무들에 내재해 있는 고유한 법칙을 따르는 일이다. 아름답고 강인한 나무보다 더 성스럽고 더 모범이 되는 것은 없다. 

본문에서 헤세는 나무는 강력한 설교자라고 했으며, 그래서 나무들을 숭배한다고 말하고 있다. 

설교자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으나 조용히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는 나무를 보고 있으면 공감이 가는 비유다. 

그래서 숭배란 단어를 선택한 것 같다. 숭배란 대상을 우러러 본다는 것인데 지극한 존경, 숭상, 공경을 뜻한다. 

다음의 표현도 참 기가막히다는 생각을 들게했다. 

 밤바람에 소슬거리는 나무들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정처 없이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가만히 오랫동안 귀 기울이노라면, 방랑하고 싶은 마음의 의미가 드러난다. 그것은 고통이다. 고통을 겪으면서도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 그 무엇이다. 방랑은 고향을 그리는 향수이며, 어머니를 기억하는 동경이다. 삶의 새로운 비유를 찾으려는 동경이다. 방랑은 고향집으로 이끌어 간다. 모든 길은 고향집으로 향해 있으며, 모든 걸음은 탄생이다. 모든 걸음은 죽음이며, 모든 무덤은 어머니이다. 그처럼 나무는 저녁에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불안해할 때 솨솨 소리를 내며 말한다. 나무들은 긴 생각을 지니고 있다. 우리들보다 더 오래 살며, 호흡은 길고 고요하다. 우리가 나무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한 그들은 우리보다 현명하다. 나무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면서 생각이 짧고 어린애같이 서두르는 우리들은 말할 수 없는 즐거움에 젖는다. 나무들에게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더 이상 나무가 되려고 갈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되려 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1918년)

 이처럼 나무에 대해 진지하게 진정성이 느껴지도록 표현한 작가는 어느 글에서 만나기 어려웠다. 

가장 좋아하는 서양 작가중 한명인 헤르만 헤세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심성을 지니고 감성을 표현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헤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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